저는 좀 게을러서 갖고 있는 것들을 주변사람들이 바꾸라고 몇 번을 말해도 큰 이상이 없으면 그냥 살아가는 타입입니다. 우선 왠만큼 머리카락이 자라도 그냥 저냥 살다가 사자머리를 만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고, 집에서 신는 슬리퍼도 어디서 물감도 묻고 떨어져나가고 해서 완전 각설이가 신으면 어울릴법한 것이지요. 특히 핸드폰은 아예 안 갖고 다니다가 동생이 폰을 바꾼다고 하기에 ‘그럼 너 쓰던 거는 나 줘라’ 하면서 쓰던 걸 물려받아서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번에 여자친구님께서 새로 폰을 장만하시면서 제 것도 함께 바꿔주신다 하시기에, 기꺼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도착한 폰을 받자마자 제가 한 일은 내장되어 있는 게임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골프게임을 완벽하게 정복한 제가 다음 목표로 삼은 것은 ‘명인장기’라는 게임이었습니다. 장기는 장기인데 ‘명인’자가 붙은 것은 고대 치우천황부터 조선 이순신 장군까지 여덟 명의 명인을 상대로 승부를 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엔 친구들이나 어른들을 상대로 장기를 두면서 즐거움을 맞봤던 저로선 살짝 떨리는 마음을 안고 게임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체스 챔피언이 컴퓨터에게 졌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고 해서 컴퓨터가 보일 현란하면서도 탄탄한 게임을 기대하면서요. 그런데 왠걸? 컴퓨터는 방어만 철저하게 하고 제 실수만 노릴 뿐 결코 공격은 하지 않더라구요. 이게 슈퍼 컴퓨터와 핸드폰 컴퓨터의 차이인가 하면서 보니 제가 매우 공격적으로 다루었던 ‘차’나 ‘포’는 수비를 주로 맡고 ‘상’과 ‘마’를 주로 공격수단으로 쓰더군요(물론 컴퓨터의 ‘마’에 연달아 제 병력이 나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하여간 그 덕에 저는 무리 없이 컴퓨터를 이길 수 있었고, 클리어의 대가로 게임 배경 병풍을 바꿀 수 있는 포상을 받았습니다(참 고전적인 인센티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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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모든 알들이 긴밀하게 짜여 수비를 하면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는 컴퓨터에게 뒷통수를 몇 대 맞으면서 최근에 읽었던 글 하나를 떠올리게 하더라구요.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이라는 제목을 단 복거일씨의 산문집 중 ‘나무타기의 비결’이라는 짧은 글에 나와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쌍륙(雙六) 솜씨가 뛰어났다는 사람에게 그의 이기는 비법을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이기려고 마음 먹고 치면, 안 된다. 지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말을 써라. 어떻게 하는 것이 지는 수가 되는지 판단한 뒤에, 그 수를 쓰지 말고 한 칸이라도 더 버틸 수 있는 수를 쓰면, 된다.’ 이 말은 과연 도리를 아는 사람의 가르침이라 할 만하다. 몸을 닦고 나라를 유지해 나가는 길도 마찬가지다.”(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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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바둑, 군자의 삶’이라는 짧은 글에 나온 다음 문장도 비슷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그런데 이렇게 인용하니까 이 책이 이런 뜬구름 잡는 내용을 가득 담은 책 같지만, 실은 이런 얘기들은 이 책에서 비교적 예외에 속하고 꽤나 정교한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창호 바둑의 두드러진 특질은 무리한 수를 두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는 점이다. 그런 특질은 그가 불리한 판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일반적으로, 바둑이 불리해지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비상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법수들을 두기보다는 상당히 위험하거나 무리하게 보이는 수들을 고른다. 이른바 ‘승부수’다. 그러나 이창호는 그렇게 하는 경우가 드물다. 상황이 뚜렷이 불리해져도, 그는 법수들을 두면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대개 기회는 찾아오고, 그는 판세를 역전시키곤 한다. 아직 어린 기사가 보인 그런 어른스러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찬탄을 했던가. (P.191)

 저야 피드백이 없는 컴퓨터와 대결을 했기 때문에 ‘승부수’를 남발하면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세계는 다릅니다. 제가 예전에 읽은 ‘손자병법과 21세기’라는 책에서 유일하게 기억나는 다음 구절처럼요.

 손자는 말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내가 위태롭게 되지 않는다.<백전불태(百戰不殆)>' 위태롭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재기하지 못할 정도까지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자의 전쟁철학은 승리의 철학이 아니다. 백 번 이긴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상처뿐인 승리는 명분만 승리이지 진정한 승리가 아니다. 진정한 승리는 내가 피해를 입지 않고 이기는 것(全勝), 적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不戰而勝)이다. 즉, 승리는 나의 안전을 전제로 한 승리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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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어쨌든  知彼知己 百戰百勝 이라는 말은 손자병법에 없고, 손자병법엔 知彼知己 百戰不殆 라는 말이 있다는 거죠. '손자의 전쟁철학은 승리의 철학이 아니다'라는 말이 특히 인상적이네요.

 여기서 팝펀딩 얘기를 살짝 하고 넘어갈까요?(물론 전쟁은 양측이 제로섬 게임을 펼치거나 양측 모두가 손해보는 경우도 발생하지만, 팝펀딩의 경우 투자자와 투자받는 분 모두가 대체로 이익을 얻어가는 비영합게임입니다.) 知彼知己를 투자자 입장에서 본다면, 彼라는 말이 꼭 적은 아니고 You라는 의미도 있기에 투자 받는 분과 스스로를 잘 파악하면 결코 위태해질 일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로 팝펀딩에서 知彼知己 하면 높은 수익률이 아니라 팝펀딩 시스템에 실망하면서 떠나지 않게 될 수 있다는(대손율 0%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겠죠. 그런데 팝펀딩에선 知彼와 知己중 투자 받는 분이 대손에 이를 것인가 이르지 않을 것인가, 즉 知彼에 대한 판단은 많이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팝펀딩에서 知己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게 많은 투자자 여러분이 스스로 대손에 대한 예측력과 판단력을 평가하는 것이라라고 생각합니다(물론 팝펀딩 내에서 대손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날이 오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은행에서 주로 활용하는 것처럼 신용할당을 써야 합니다. 신용할당의 그늘에 빛을 드리우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팝펀딩에서 대손율 제로는 필시 수요를 제한하는 일이 될 겁니다). 그리고 투자자 여러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만큼 실망하지 않도록 팝펀딩에선 갑순이 혹은 갑돌이를 선정해두었습니다. 선택은 자유지만 知己의 결과가 갑순이와 갑돌이가 필요하다면, '구경 한번 와보세요'. 그럼 홍보는 이만, 오늘까지 대손율 순위를 공개하면서 이번 포스팅을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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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11:51 2009/07/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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